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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사용법 - 자기 성찰

자기 성찰

깐깐하게 따질수록 더 많이 후회하는 까닭

이사할 집을 알아본 지 한 달 만에 홀딱 반할 만한 집을 발견했다. 다행히 빈집이어서 당장이라도 계약할 수 있다고 한다. 내일 집주인과 만나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이런 집을 또 발견할 수는 없을 테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는 심정으로 그 집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조목조목 적어 보았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보고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낀 다음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목록을 적어 보면, 돌연 감정과는 반대되는 이유를 더 많이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거꾸로일 때도 마찬가지다. 나쁜 감정이 들어 그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오히려 좋은 점이 많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다. 왜 그럴까? 감정의 근거 목록을 적는 것은 ‘자기 성찰’의 일종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감정과 생각을 낳은 원인을 알아보려는 시도다. 그러나 감정의 진짜 원인을 알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훨씬 많다.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근거 목록에 등장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과 동떨어진 근거 목록을 손에 쥐고 깜짝 놀라고 만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티모시 윌슨은 마음의 드넓은 영토에서 의식이 차지하는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의식되지 않은 채로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적응 무의식이라 부르는데, 적응 무의식은 제트기의 자동 항법 조정 장치처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파악하고, 위험에 대해 경고음을 내고, 목표를 설정하고, 임무를 탁월하게 수행하도록 해 준다. 우리가 매초 받아들이는 정보는 1100만 개에 이르는데 그중 의식적으로 처리되는 건 고작 40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 삶의 대부분은 우리 자신도 모른 채 이루어지므로 의식적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자기 성찰은 늘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근거 목록의 결정적인 약점은 애초에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근거만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근거 목록은 원래 우리가 품었던 감정과 일치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더욱 위험한 일은 우리가 목록을 만듦으로써 그 목록에 맞게 생각을 적응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점이다.

 

한 심리 실험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만 배우자와의 결혼이 행복한 이유를 분석해 보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니 행복의 근거를 요모조모 살펴보았던 그룹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이혼하는 비율이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 또 소프트드링크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만 그 원인을 말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실험이 끝난 뒤 근거를 대야만 했던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던 학생들에 비해 소프트드링크를 거의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퍼즐, 초콜릿, 사진 등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이 이어졌다. 좋아하는 대상은 달랐지만 좋아하는 이유를 대야만 했던 사람들은 실험 이후 언제나 그 감정이 식어 버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자신의 감정을 분석해야 했던 사람들은 막상 이유를 찾다가 혼란에 빠진다. 자기 감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너무 빈약해서다. 결국 자기 성찰의 일환으로 시작된 감정의 근거 목록은 오히려 그 감정을 포기하라고 자신을 설득하게 만든다. 만약 새집 계약을 하루 앞두고 근거 목록을 썼다면 다음 날 계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애초 마음에 들었던 집을 계약하지 않은 사람은 며칠 뒤 땅을 치며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집에 홀딱 반했을 때는 분명히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근거는 굳건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본래 감정이 다시금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집이 마음에 쏙 든다면 내일 꼭 계약하라.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냥 사랑하라. 그녀가 좋은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따져 보려고 안간힘 쓰지 마라. 그랬다가는 돌연 사랑이 식어 버릴지도 모른다. 의식적인 자기 성찰은 엉터리 자료들을 근거로 자기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 지나친 심사숙고는 빈약한 근거 목록에 눈길을 주도록 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할 수도 있다. “길게 숙고하는 사람은 언제나 최선의 것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괴테의 말을 기억하라. 그리고 자기 성찰 대신 차라리 자신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라. 우리는 때로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더 정확히 분석할 때가 있는데, 본인은 익숙해서 모르고 있던 적응 무의식을 타인의 입장에서 의식적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을 관찰하듯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편이 오히려 나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물론 근거 목록은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 감정 자체가 모호한 경우 조촐하게 성찰해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감’이 온다면, 믿어라. 당신이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 삶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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