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사용법 - 폭스 박사 효과
폭스 박사 효과
능력만큼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어느 날 헤드헌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 공석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입사 시험으로 면접관 앞에서 짤막한 강의를 해야 하는데, 강의 주제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것이다. ‘체육 교육에 적용한 수학의 게임 이론’. 게다가 이 분야의 전문가들도 강의를 듣기 위해 참석한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까? 첫째,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거절할 수밖에.” 둘째, “전혀 모르는 주제다. 그렇지만 이틀 밤을 새워서라도 짜깁기 강연 원고를 쓴다.” 셋째, “전혀 모르는 주제다.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틀 동안 고급 정장을 장만하고 이력서를 더욱 섬세하게 다듬는다.”
1972년 미의과대학협의회 의학 교육 연구 학술 대회에서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마이런 폭스 박사가 ‘체육 교육에 적용한 수학의 게임 이론’을 주제로 열정적인 강연을 펼쳤다. 폭스 박사의 외모는 단정했지만 깊이가 있어 보였고, 태도는 자신감이 넘쳤으며,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등 지적 수준이 높은 청중들은 모두 폭스 박사가 난해한 주제를 알기 쉽게 풀어냈고, 강연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그의 논문을 읽어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마이런 폭스는 박사가 아니라 ‘배트맨’, ‘형사 콜롬보’ 등에 출연한 전문 연기자였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의 강연 내용은 여러 가지 과학 논문을 토대로 얼토당토않게 구성된 짜깁기 원고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유머와 개인적인 사례도 즉흥적으로 지어낸 것들이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난 뒤 청중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이 칭찬 일색이었다. 청중들 중에는 게임 이론의 전문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실험을 설계한 사람은 도널드 나프툴린 의학 박사와 존 웨어 주니어, 프랭크 도넬리였다. 이들은 교육자에 대한 학생의 평가는 대개 인성 변인에 의해 결정되고 교육 내용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다시 말해 강의 내용 자체는 학습자가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에 별로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평가는 강의자의 표정, 태도, 자신감 같은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이런 태도는 교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아주 쉽게 발견된다.
권위를 나타내는 말을 적절히 섞고 연출을 잘하면 사람들을 속아 넘어가게 만들 수 있는데, 이를 ‘폭스 박사 효과’라고 한다. 폭스 박사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뇌의 게으름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능동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를 좋아한다. 언제나 더 단순한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하고 이것을 더 단순한 형태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눈앞의 정보를 합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지기보다 머릿속의 고속도로를 따라 재빨리 처리해 버린다. 그러나 머릿속 고속도로는 때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단순히 편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폭스 박사 효과는 이른바 권위자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허락하게 만든다. CEO들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문제를 놓고 경쟁 운운하며 쉽게 이야기하고, 정치가들 역시 금융 시장 규제 등 첨예한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이지만 가끔은 그들이 이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모두 맞겠거니 고개를 끄덕인다. 대중의 이런 태도에 대해 미국의 정치인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고백했다. “유명해지면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내가 말을 지루하게 하더라도 청중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위에 약하다. 그러나 의사도 오진을 하고, 변호사도 엉뚱한 상담을 하며, 기자가 세상일을 잘못 풀어 주기도 한다. 전문가라고 해서 완벽한 인간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옷차림에 그럴듯한 목소리를 자랑하는 전문가에게 모든 걸 맡기지 마라. 때로 전문가들은 대중의 이런 성향을 이용해 더 어려운 말을 구사하려고 하고, 불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전문가를 만나거든 잘 모르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하나하나 쉽게 설명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전문가들에게 권위의 환상을 덮어씌우지 마라. 세계적인 석학 놈 촘스키는 “쉽고 간단한 말로 표현하면 전문가들은 유명해질 수 없고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전문가의 말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지식인들의 고민이 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폭스 박사 효과는 이용해 볼 만한 점도 있다. 당신이 가진 콘텐츠가 이미 훌륭하다면 외모를 가꾸는 데 조금만 투자해 보라. 사람들의 편견을 살짝 이용하는 것이다. 어쨌건 세상 사람들은 멋진 옷차림과 세련된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갖는 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면접에서 ‘체육 교육에 적용한 수학의 게임 이론’에 관한 강의를 해야 한다면? 일단 멋진 정장을 사라.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강연 원고를 써라. 자신감을 가져라. 폭스 박사가 할 수 있으면 당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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